에세이

동대문 지역에 대한 가설

바 람 탄 2013. 6. 8. 06:01
동대문이라는 곳은 블랙홀 같다. 아닌게 아니라 서울에서 제일 다양한 인종과 물건들 또 건물들, 시간들이 뒤섞여 있는 곳이 동대문이다.

어쩌면 이곳의 장소적인 특성이 마치 강력한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게 아닌가 싶다. 시간을 거슬러 1800년대로 조선시대로 가보자. 그곳에는 저잣거리로 옷가게, 화장품가게, 또 수많은 수공예품들이 즐비하던 곳일 거다. 배오개 시장이라고 불리던 이곳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4대문중 하나인 동대문이 있기 때문이었다.

동대문은 왕이 공식적인 행차를 하던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동대문 지역과 이어지던 광희문이 시체가 나가던 문이었고, 또 오간수문이 도성의 하수가 나가는 문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동대문은 도성 안에 있던 무엇들을 내보내고 처리하는 곳 이었거 이에 남대문과 달리 다른 상권이 형성 되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남대문을 주로 이용하던 계층은 양반과 돈이 많은 중인들이었고 동대문은 서민이었을 것이다. 이에 시장의 형성도 다르다. 보석상, 종이를 파는 곳, 그림 등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들을 파는 곳이 남대문에 형성되었다면, 동대문은 음식 중에서도 주음식 자재가 아닌 손질을 하고 남는 것들이 팔렸을 것이다. 곱창이라던지 가죽쪼가리로 만든 무엇들.

또 동대문에는 대장간과 갖바치, 옷을 만드는 장인이 존재했다. 지금의 창신동 봉제공장처럼 이들이 시장 인근에 거주하며 산업클러스터를 형성했던 것이다.

동대문은 정문이 아니라 옆문 쯤이 되었을것 같다. 정문이라면 광희문이 가까울리가 없다. 또 왕의 능행길에 사용했던 뭔가 조용히 행차하고 싶을때 사용했던 문이다.

근대로 오면서 동대문의 현대적인 시장들을 갖게 된다. 뛰어난 상업적인 감각을 지닌 장사치들은 동대문이 갖는 공간적인 성질을 잘 파악했을 것이다. 광장시장도 단순하게 민족적 자존이라는 요소보다는 흥행이 될 것 같기에 이곳에 시장이 들어섰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시장의 클러스터가 흥망성쇄는 공연예술 클러스터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모여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동대문이라는 지역성은 바로 그런 사람이 모이는 것 이라는 오랜시간을 거쳐오며 형성된 장소적 성질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최초의 전차차고지로 오픈식을 고종이 이곳에 열었다는 사실도 또 광무대라는 당시의 공연 테크놀로지가 집약된 극장이 있었다는 것도, 동대문운동장이라는 스포츠의 메카가 있던 것도 또 쇼핑몰, 지금의 ddp까지. 이 장소는 어마어마하게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무엇이 있는 것이다. 마치 블랙홀처럼.

왕이 결정한 사항이 아닌 지금의 감각적인 컨설턴트의 역할을 했던 풍수나 무당들이 이곳을 무엇이라고 보았을까도 그러기에 궁금하다.

자하디드가 ddp를 그런 모양을 구상한것도 아마 그런 에너지를 보지 않았을까 싶다.

동대문은 기본적으로 낮은 지대이다. 장소적인 특성에 따라 흘러 내려오는 곳이고 즉 저기압 지대이다. 바람도 모이고, 물도 모이고, 사람도 모인다. 청계천 중 과거 훈련원 자리였던 지금의 동대문관광특구와 동대문운동장자리가 그런 기운이 가장 강했을 것 같다.

이외에도 물가나 인적자원들의 배치 등등 굉장히 많은 요소들이 이 지역이 대규모의 시장단지를 형성하게 되는 요인들이 되었을 것이라고 보는데 가장 주요한 특징은 역시 뭔가가 모이는 곳이라는 성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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