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람다움과 나의 삶

바 람 탄 2024. 1. 7. 05:13

종교는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영성에 대한 관점도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종교라는 것은, 철학과 더불어 하나의 관점이며 세계관이다. 인류가 이제까지 발전해오고, 하나의 도덕체계를 구축할 수 있던 역할은 종교의 소임이라고 볼 수 있다. 법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을 종교가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종교는 '이야기'를 통하여 그 지혜를 전달하고 있다. 하나의 이야기는 강력한 힘을 가져 인류에게 보편적인 지혜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의 법과 또는 도덕에 거스르지 않게 하여 인간이 인간으로써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 유튜브를 보면, 불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불교는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많으며,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하고,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 한다.  
각 종교들의 관점은 유사하다. 각각의 신을 이야기 하고 있으나, 사실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서술하고 있다. 기독교는 신을 통하여 삶의 해결을 받고자 하고, 불교는 선과 명상을 통하여 스스로가 깨우치고자 한다. 
하지만, 사실상 둘다 맞는 말이긴 하다. 둘다 인간을 보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랑'을 이야기 하시고, 부처님은 '자비'를 이야기 하셨듯이, 살아가는 동안에 삶이 유지되기 위해서 가져야할 보편적인 진리를 이야기 하셨던 것이다. 
결국엔 삶을 이어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스스로에 대한 연민 뿐만 아니라, 이웃에 대한 연민, 그리고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같은 표현이라고 생각을 한다. 
사람은 과학적으로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우리는 같은 에너지에서 분리되었고, 그 에너지가 사람이 되었다.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에너지, 즉 현재의식을 '말씀'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 까 싶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각각의 종교는 각 시대에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을 한 것이다. 신을 영접한다는 것은 의식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이다. 
 
나에게 여러 경험들이 마냥 괴로움이었나?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괴로움 속에서 깨달음도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그저 괴로움일 뿐이었고, 내 생각일 뿐이었고, 이제 그 생각이 나에게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저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사라질까봐 두려움을 갖고 있지만, 그것 또한 생각일 뿐이다. 그렇다면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살아간다는 것은 함께 공유하고 삶 속에서 사랑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영원이라는 것은 0과 1사이의 무한대의 쪼개짐 일까? 의식이 빛처럼 빠르게 되어 끝나지 않는 꿈인 것일까?
 
우리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개인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홀로 살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닌, 함께 서로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다운 것이 아닐까 싶다. 
 
서로의 어깨에 기댈 수도 있고, 어려울 때 손내밀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삶인 것이다.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 함께 해결하여야 하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찾는 다면 쉽게 그 해결책을 발견할 수도 있다. 
 
나는 나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족 안에서, 나의 공동체 안에서, 나의 사회안에서 함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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