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앉는 바위위에 앉곤 낚싯대를 놓았다.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다. 바람이 고목나무의 나뭇잎을 흔들어 쏴아아 소리를 낸다. 늘 듣던 소리이지만, 이 연못도 이제 한동안 못 본다고 생각하니 서운하다. ...
나는 나이답지 않게 낚시를 좋아한다. 그래서 종종 생각할 것이 있으면, 오늘처럼 혼자 연못에 앉아 낚싯대를 놓고 한참을 골똘히 생각을 하곤 한다. 낚시는 아빠가 가르쳐 주었다. 소설가였던 아빠는 글이 풀리지 않는 날이면 나를 데리고 이 연못에 낚시를 하러 나왔다. 그리고 낚싯대를 드리우곤, 어린 나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아빠는 한 번도 물고기를 잡은 적이 없었다. 간혹 잡히는 두꺼비들도 아빠는 놓아주었다. 그래도 나는 아빠와 함께 낚시를 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재미났기 때문이다.
한번은 연못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 달에 한번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연못에는 요정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 요정은 연못가에 있는 커다란 고목나무의 요정이라고 하였다.
연못가에는 커다란 고목나무가 있다.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400년 쯤 된 나무라고 한다. 고목나무 밑둥에는 큰 옹이가 있다. 옹이는 구멍처럼 뻥 뚤려, 작은 동물들이 드나들 정도가 되었다.
아빠는 고목나무의 요정이 그 구멍 안에 살면서 아픈 동물들을 치료해준다고 하였다. 동물들이 아플 때, 작은 동물들은 그 구멍 안에 들어가서 치료를 받고, 큰 동물들은 발을 그 구멍에 넣으면 아픈 곳이 치료가 된다고 하였다.
나는 어렸을 때는 그 이야기를 믿었다. 이제는 그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는 물론 비밀이라고 하였지만, 그 동네에서 태어서나 부터 살아온 내 짝 수희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돌아가셨다.
엄마와 아빠는 연애결혼을 하였다. 그 당시에 아빠는 멋쟁이였다고 한다. 엄마는 아빠의 담배피는 모습이 멋있었다고 하였다. 다방에 앉아서 골똘히 생각하며 담배를 피는 모습에 엄마는 반했었다. 글을 쓸 때 면 줄담배를 폈던 아빠는 폐암판정을 받고서는 담배를 끊었다. 담배를 끊고 나서 부터 낚시를 시작하셨던 것 같다.
건강이 호전되는 것 같다가 내 중학교 입학식 일주일전에 돌아가셨다. 엄마와 나는 갑작스러웠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3년 동안 많은 것이 변하였다. 엄마는 동생과 나를 키우기 위해서 더 억척스러워지셨다. 새벽같이 나가셔서 밤늦게 오셨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니길 원하셨다. 아빠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이제 중학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전학을 간다. 서울에 계시는 고모댁에서 살게 된 것이다. 나는 엄마와 떨어지는 것도 슬펐지만,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였다.
오늘 반 친구들에게 전학을 간다고 이야기 하였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앞으로 불러내어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시켰다. 가장 친한 친구인 영철이는 엉엉 울었다. 짝궁인 수희는 토라졌는지 방과 후까지 아무 말도 안했다. 마음이 그래서 미리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키가 작고, 얼굴이 하얀 수희를 나는 토끼같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수희보고 나는 내가 나중에 작가가 되면 그림책을 함께 쓰자고 신나게 얘기도 했었다. 수희에게 방학 때면 만나러 올거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 얘길 하지 못하였다. 이상하게 내일이면 엄마와 떨어지는 것보다 그 얘길 하지 못한 게 맘이 더 아펐다.
연못에 띄운 낚싯대가 움직인다. 물고기 때문은 아니다. 아마 바람 때문인 것 같다. 연못에 담긴 보름달이 잔잔하게 흔들린다. 건너편 고목나무에 작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림자는 꼭 옹이에 손을 넣는 것 같았다. 아빠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고 건너편 고목나무 근처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갈 때 실수로 나뭇가지를 밟았다. 부러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연못가를 울렸다.
“악! 깜짝이야!” 계집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수희였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나는 그림자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보다, 수희를 다시 본거에 숨이 가빠지는 것 같았다. 얼굴이 벌게 진건 아닌가 괜시리 어둠속에 숨고 싶었다. 밝은 보름달에 표정을 숨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아. 아무것도 아냐. 그냥 여기 와봤어. 너 보려고 온건 아니야.” 하고 수희는 뭔가 들킨 사람처럼 훽 돌아섰다.
난 숨을 크게 들이쉬고 그래도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여튼 너 다시 보게 돼서... 다행이다. 아까 학교에선 제대로 얘기도 못하고... 나 방학 때면 너 만나러 올게. 매번 올 거야.”
수희가 고개를 돌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니 더 토끼 같았다. 노오란 보름달빛에 속눈썹도 선명하게 보였다.
“날 보러 온다고... 그..그럴 필욘 없어.”
난 수희에게 낚시를 하던 중이었다고 이야기 했다.
“나 낚시를 하는 중이었어.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생각이 많을 때면 낚시를 했거든. 그래서...”
“알아. 네가 얘기 했었어.”
“...”
“밤이 늦었어. 내가 데려다 줄게.”
나는 낚싯대를 챙겨서 수희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집앞에서 수희는 예쁘게 접힌 쪽지를 나에게 주었다.
“서울 가면 공부 열심히 해. 넌 머리가 좋으니깐 잘 할 수 있을거야. 편지도... 가끔 하고. 이건 나중에 봐. 잘 지내구.” 그렇게 이야기하고 수희는 쪽지는 집에서 보라고 했다.
수희가 집안에 들어가는 것을 한참 바라봤다.
집에 와서 쪽지를 펼쳐보니,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보름달이 뜬 밤에 하얀 흰토끼가 고목나무에 손을 넣고 있는 그림이었다. 토끼 뒤로는 다람쥐, 부엉이, 노루가 줄을 서 있었다. 난 웃음이 나왔다. 그림 밑으로 수희의 글씨체로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연못에 고목나무 이야기. 나는 믿어.’
그 얘기가 왠지 수희와 나를 이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따스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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