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전뇌장치

바 람 탄 2011. 8. 2. 02:05
소개팅으로 두 번째 만나는 수희씨를 만나기 위해서 서울대입구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을 타자 운좋게도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 옆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자리에 앉은  나는 아이폰을 꺼내 만지작 거리다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내 옆에 앉아 있는 짧은 치마의 여자분이 아니라 아이폰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수희씨에게 말을 건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답변이 오기 전까지 내 옆의 그녀를 잠깐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 또한 고개를 숙인채 누군가와 문자를 하는듯 얼굴을 확인 못했다. 아마도 예민한 그녀의 손가락은 중추신경을 따라 바로 뇌로 연결된 듯하다. 말을 하지 않지만 저 너머의 목소리가 작은 화면위로 나타날 것 같다.  

"ㅋㅋㅋ"

나는 예의있게 수희씨가 불안하지 않도록 문자를 찍어낸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퀴티자판을 찍어내는 손가락은 날아갈듯 경쾌하다.

아 잠깐, '우리 이미 연인일까? ', '당신은 나를 친밀하게 느낄까?', ' 전화를 하면 어색할까?'
몇가지 생각이 오고가지만 외롭고 싶지 않는 나는 이 시간에,당신이 외로워할 이 시간에, 당신의 머릿속을 채워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오고가는 짧은 문장들 속에서 친밀해진다. 친밀해졌다고 느낀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손을 잡지도 않고, 당신의 땀냄새로 느끼지 못했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고, 내가 보고 싶은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지만, 우린 서로를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 한다. 

머리를 숙인채 난 또 손끝으로 당신에게 접속한다.

"그. 런. 데. 어. 디. 에. 계. ㅅ"

여기까지 적었을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건다.

" 이봐요. 학생 대림으로 갈려면 이 차 타는 거 맞죠?" 

대림역은 다음 다음 역이다. 난 힐끗 아주머니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뒤따라 오는 아주머니의 말이 들린다.

"아니, 요즘 사람들은 대꾸를 안해. 참 입에 바늘을 꼬맸나"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지만 아주머니는 다음 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다시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 런. 데. 어. 디. 에. 계. 세. 요?"

전송을 누르고, 잠시 후 그녀의 답변이 뜬다.

"러블리수희: 아니, 대림역이에요. 이에 내릴려구... ㅋㅋㅋ 제가 조금 빨리왔죠?"

마침 지하철이 대림역에 선다. 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나와 같은 차를 타고 있나 보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문이 막 닫히려고 하는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내렸다.

나는 다시 아이폰을 꺼내서 그녀에게 문자를 찍었다.

"아. 겨. 우. 내.렸. 음. ㅋ. ㅋ.ㅋ. 저. 도. 대. 림. 임"  전송을 눌렀다.

금방 그녀의 답문이 왔다.

"러블리수희: 아 놓쳤다. 잠깐 다른 거 확인하다. 못 내렸어요. 근데 내 옆에 남자 분이 지갑을 놓고 내렸네요. ㅋㅋㅋ"
난 그녀의 답문을 확인하고 문자를 찍으며 계단으로 올라갔다. 고개를 숙인채 사람들의 발들을 뒤따라 지하철 개찰기로 걸어 올라갔다.
 


"저. 먼. 저. 밖. 에. 나. 가. 서. 기. 다. 릴. 게. 요" 

전송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고, 교통카드를 꺼내기 위해 개찰기 앞에서 지갑이 있는 엉덩이쪽의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지갑을

지하철에

놓고

내린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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