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내가 만난 고양이

바 람 탄 2010. 3. 19. 01:41
촤르륵.

나는 이렇게 자전거 체인이 돌아가는 소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두 다리를 저어서 가벼운 밤바람를 가르며 도로의 소음을 피해 이리저리 떠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쉬이익
귓가에 들리는 바람소리

어릴 적 꿈에서 날기 위해 두다리를 젓는 것 처럼 내 노란 배를 타고 두다리를 노 삼아 저으면 두둥실 적당히 떠다닐 수 있는 것이다.

노오랗게 부서진 공원의 가로등 빛깔로 칠해진 까만 밤을
그날도 그렇게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쉬이익
차르륵

적당히 마주보고 서있는 가로수들을 지나,
-적당히 마주보고 서있는 사람들을 지나

한무리의 호숫가에 사람들을 지나,
-한무리의 호수의 오리들을 지나

작은 휘파람을 흘리며, 내가 좋아하는 비틀즈 컬렉션-헤이 주드, 썸씽, 옐로 써머린, 컴 투게더, 흘러가듯 공원의 도로를 따라 정문을 빠져 나왔다.

늘 멀리 떠나니라 맘먹은 것 처럼 그 날도 차들이 지나는 도로- 넘어가보지 못했던 그 도로, 를 바라보며 다짐을 하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휘파람이 막 '렛잇비'를 흘릴 때 난 그 '골목'앞에 멈춰섰다. -역시 두둥실 떠다니다가

갸아-웅

네 목소리는 갈라졌다. 난 네가 아마도 쓰레기통의 버려진 닭 뼈다귀를 먹다가 목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하였었다. 답답하고 아파보이는 목소리 였다.

갸아-웅

젖어 있었다. 털은 약간 젖어 있었고 어디가 아픈 건지 너는 너보다 무게가 열배는 됨직한 한 인간이 네게 다가서는 데도 미처 피하질 않았다.-현명한 도둑 고양이라면 인간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안그래도 작은 몸둥이의 너 일텐데 젖은 털은 너를 더 작고 가냘프게 하였다.

'오늘 오후까지 내린 비를 맞았나 보군.' 난 이렇게 생각하였다.

가까이 가자 넌 내게, 아니 내 자전거 앞바퀴에 몸을 부벼댔다. 난 고양이가, 그것도 도둑고양이가-네 모습을 보면 도둑고양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행동하는 것에 뭔가 모를 안쓰러움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넌 이렇게 말을 하는 듯 하였다. '나는 몸이 간지러운 것 뿐이야. 오후까지 비를 맞았단 말이야. 아 시원하군. 이봐 내 등 좀 긁어 줄래?' 자전거 바퀴에 몸을 부벼대는 넌, 기분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전에 도둑고양이 새끼를 길들여 본 적이 있었다. 그 녀석은 할 퀴고 물고 아주 사나웠다. 반시간 동안 우유를 가지고 협상 끝에 서야 우윳방울 묻힌 내 손가락과 타협을 하였었다. 헌데 고양이가 이렇게 무방비해서야 되는 것인가? ' 어이, 고양이라고 성격이 다 같겠어? 허어. 이친구 보게나. 자네 어리구만.' 너는 내가 너보다 훨씬 크고 힘이 쎄다는 것을 모르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였다. 물론, 넌 저기 골목에 세워진 트럭 바퀴의 그림자에도 숨을 만큼 유리한 몸집이고 내가 도저히 좇지 못할 만큼 빠르긴 하진 말이다.

널 만난 그 시간 동안 난 너와 이야기를 나눈 듯 하다. 네가 덩치가 나만하다면 혹 내가 너만큼 작아 질 수 있다면 어깨동무라도 하고 싶을 만큼.

'인간들은 말이지...많은 것을 바라보지 못해.'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듯 하다. 무엇을?

'이 도시만 해도 그래. 사실 인간들은 이 도시에 지들만 사는 줄 알고 있지.'

그래?

'이 좁아터진 도시에 우리 고양이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르지?'
넌 이렇게 말하고 내 눈치를 살피는 듯 하였다.

'험. 말해줄까?'
눈을 작게 지푸리면서 설마 듣고 싶어 할까? 라는 표정으로 말을 하였다.

그래. 얘기해줘봐.
난 네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자전거 옆에서 몸을 작게 웅크리고 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고양이군과 한 이야기들은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였었다. 사실 이 이야기들을- 이 도시에 엃힌 이야기들을-누군가에게 한다고 하여도 그때 내가 가졌던 느낌만큼 그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믿을 수 있을까?
고양이 군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

고양이들은 사실 늘 우리 주변에 있다.
낮엔 재빠른 움직임으로 밤엔 그림자속에 몸을 숨기며 우리의 눈을 벗어 나는 것이다.

고양이군을 만난 이후로 내 눈엔 부쩍 고양이들이 많이 보인다. 물론 다른 고양이들이 고양이군처럼 내게 말을 걸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은 '상대적'이 아닐까 싶다. 굳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상대적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당신이 저기 창문 너머에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면, 당신은 창문에 찍힌 누군가의 손가락 자욱을 알 수 없을 것이고 창과 당신 사이에 서울의 인구 만큼 많은 작은 먼지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

당신이 이 파랗게 일초에 몇 백번씩 흔들리는 모니터를 바라보는 순간에도 당신 주변의 고양이는 야옹 야옹 울어 델테고, 당신 집 쓰레기통에 사는 혹 회사의 화단에 사는 바로 그 고양이는 닭뼈다귀가 목에 걸렸을 지도 모르지. 갸아웅하고 울어 데면서 말이야.

두 눈이 머무는 곳에 의식이 머문다. 의식이 머무는 곳에 두 눈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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