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열두 줄의 20세기 디자인사, 김민수의 문화디자인을 읽고(디자인이 갖는 의미)

바 람 탄 2010. 3. 27. 01:40

                                  

책을 읽으면서 내내 책 내용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생소한 언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온 20세기와 21세기를 거쳐오는 삶은 디자인과 무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디자인 속에서 살아온 삶이었다. 도대체 디자인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 대답을 하려면 이 두 권의 책을 세 번을 더 읽어야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수많은 디자인들 속에서 나의 살아온 시간을 더듬어 보며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내가 무엇을 강렬하게 갖고 싶었던 디자인에 대해 가장 오래 된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바로 8비트 오락기인 닌텐도의 패미컴이다. 나는 친구 집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과 티브이에서 여러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정말로 맘 속 깊이 갖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게임팩을 네모 낳고 귀엽게 생긴 패미컴에 꽂으면 잠시 후 티브이 화면에 게임이 실현되는 것은 정말이지 기가 막히게 멋지게 느꼈었다. 그렇게 부모님께 게임기, 게임기를 노래를 했고 한달 여 만에 나는 게임기를 얻게 되었다. 정말이지 패미컴을 얻었을 때 기분이란 하늘을 나는 듯 하였다. 그 후로 나에게 무언가를 갖고 싶다라는 열망을 가지는 일들은 많았다. 다만 그것이 티브이 광고와 주변 친구들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학습되어진 것일 뿐 내 심미적인 취향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 대부분일 뿐 이였다.

 

디자인은 존재의 형태를 규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훌륭한 디자인은 존재가 지니고 있는 내용과 형태가 일치할 때 훌륭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디자인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모든 것들이 디자인인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현대 도시의 삶에서 디자인이 아닌 것을 찾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디자인은 상품을 더욱 매력적이게도 하고, 상품이 가진 특성을 더울 잘 알려주기도 한다. 앞의 닌텐도의 패미컴 처럼 말이다.  

내 삶 속에서 만난 최고의 디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매일 먹는 숟가락과 밥그릇이다. 숟가락과 밥그릇이야 말로 존재와 내용과 형태가 일치한 좋은 디자인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디자인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헌데 왜 우리는 디자인은 별나라에서 온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디자인 자체가 외래어여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매스미디어에서 만들어낸 디자이너에 대한 환상 때문일까? 그런데 엉뚱한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왜 디자인이라는 말 대신 쓸 수 있는 우리말은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 고유의 물건들이야 말로 기능을 따르는 형태이며, 적을 수로 많다는 그 명제와,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여러 명제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말이다. 우리 것으로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었나? 아니 원래 우리에게는 디자인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질문이 이렇게 이어지니 과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의심이 되기 시작한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동양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세상의 중심에서 비껴난 시각으로 우릴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디자인이라는 개념자체가 사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희대의 사기.

이제 디자인은 우리 삶에서 상품이 지닌 가치 이상을 것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아파트와 자동차의 형태가 내가 사는 삶의 가치를 대변하고 아이덴티티를 규정짓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자동차는 우리가 위치한 신분의 차이를 이야기 하고 있고 아파트 브랜드는 교실에서 아이의 신분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멋진 차와 아름다운 아파트는 배우자를 결정짓는 중요요소가 되기도 한다. 지독하게 슬픈 현실이긴 하지만.

 

다시 돌아와서,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현재 디자인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세계 유수의 대학에는 디자인학과가 있고 디자인을 창조한다고 믿고 있는 디자이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기호에 우리는 열광하고, 갖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일상용품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디자인이라는 가치가 백화점의 물건과 시장통의 물건의 가격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아름다움이 있는 아파트와 그렇지 못한 집구석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디자인은 정말 우리에게 이득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일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디자인이 사실은 가격을 부풀리는 장치일 뿐이라면 아들을 위해 사는 가방 가격을 조금이라도 깎기 위해 시장 통에서 목소리를 높이시는 우리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분이 아니던가?    

디자인이 정말 무언가 인간에게 금전적인 가치 외에 가치를 줄 수 있는 것일까?

김민수는 삶과 철학이 있는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문화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존재의 형태를 결정지을 수 있는 디자이너의 권력에 사회적 책임감을 이야기하고, 그 자신이 그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디자인은 텍스트를 규정짓는 행위이다. 디자인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양식으로 존재를 규정지어 주는 텍스트를 만드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기에 디자인이 가지는 가치는 디자인이 규정하는 존재의 내용과 같을 때 유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디자인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랑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김민수는 디자이너가 시대성과 치열한 자기의식이 없이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결국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세상에 던지는 자신이 생각하는 옳음에 대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형태가 기능을 따르고 그것이 가진 내용을 따라야 하는 것은 반대로 그 형태가 모든 것을 응축시켜서 설명할 수 있는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모든 가치의 기준이 외형적인 것에만 몰입된 현대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더욱이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한 이유는 소비자로 대표되는 대중들에게는 형태를 결정할 권한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질문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디자인 할 수 있는가? 서른이 이제 막 넘은 나에게 이 문제는 중요하게 다가 온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디자인 할 수 있는 것들은 하나 둘씩 사라지더니 이제 우리의 취향조차 대량화된 생산라인에 맞추어 결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과연 내가 살아온 내 삶에서 내가 디자인한 것이 있던가? 내가 좋아했다고 말했던 것들 중 과연 내가 디자인 한 것이 세상에 단 한가지라도 있었던가? 설사 있었다고 하여도 그것이 내가 속한 사회 속에서 가치가 인정되었던가?

먼 옛날에는 아니,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세대만 하더라도 우리는 많은 것들을 만들어서 사용하였다. 책상을 만들었고 의자를 만들었고 그리고 시집간 딸에게 줄 이불을 만들었다. 이렇게 디자인이라고 부를 만한 획일적이고 대량화된 생산물을 가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역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내 삶 속에서 내가 만나는 모든 것들에 내가 디자인한 것을 없다. 과연 나의 삶에서 나에게 진짜는 무엇일까? 누군가에게서 디자인된 것이 아닌 내가 만든 것은 무엇일까? 데카르트가 절대 부정할 수 없던 생각하는 존재라는 나 자신에 대한 명제가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바뀐 현재에서 타인의 디자인을 소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지금. 나는 과연 진짜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엉뚱한 상상을 한다. 인간에 대해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상품이 없어 지는 날을. 인류는 기술의 발달로 얻게 된 편리함으로, 일에서 해방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축척하게 된 시간들로 우리는 아마도 그리스 시대 이후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생각에 끝에서 우리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자아(自我)를 분명히 깨닫게 되는 순간에 우리 자신이 만들 것들로 우리 삶을 채우고 싶게 될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서 만들어져 나에게 주어지는 수동적인 것이 아닌 내가 내 삶을 규정짓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먼 옛날처럼, 발달된 기술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가 쓰는 물건들을 우리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이다.

 

두 권의 디자인에 관련된 책을 읽고, 질문만이 더욱 많아졌다. 그리고 디자인이 내가 속한 이 세상의 기호라면, 이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그 기호를 읽어낼 수 있고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또 드는 질문,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의 태도가 세상의 디자인을 바꾸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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