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밀키랜드(6) - 아마 늦은 여름이였을 거야.

바 람 탄 2010. 3. 19. 01:46

"나 참, 이게 무슨 이야기냐? 그래, 왜 럭키랑 그녀석? 얘는 왜 이름이 없어? 그래 얘네들은 거기 시골은 왜갔데냐?"

 

동아리 방 컴퓨터 앞에 앉은 형진이는 내가 쓴 글을 죽 읽더니 그렇게 시비를 걸었다.

 

"뭐야? 시비거는 거야? 야! 한번 읽어 보랬지. 누가 시비걸랬어?"

남의 비판을 수용할 만큼 마음이 넓지 않은 나는 또 이렇게 화를 내고 만다. 내가 읽으라고 해놓고.

 

"어, 누나 왜 이래. 누나가 읽어보라며? 난 순수하게 평을 하는 거야. 치- 이까짓 글 나 아니면 누가 읽어 주겠어? 와 근데 이거 너무 순정만화틱 한데. 누나, 순정만화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순정만화? 아냐. 이게 어째서 순정만화란 말이냐? 난 좀 더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관계말이야. 관계!!!

 

"이게 어째서 순정만화같다는 건데?"

난 하고 싶던 말을 간신히 참고, 형진이에게 질문을 하였다.

 

"우선..."

형진이는 눈을 작게 찌푸리고 컴퓨터화면을 쳐다보았다. 마우스 스크롤 버튼을 돌리며 이렇게 이야기 했다.

 

"럭키라는 이름. 이거 너무 순정만화틱해. 그리고 주인공이랑 럭키와의 만남. 전혀 개연성이 떨어지잖아. 우연이 너무 많어. 그리고 사랑이면 다 해결된다는 그 결론은 아주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

 

형진이는 어디 반발할려면 해보라는 표정으로 눈썹을 위로 치켜올리며 생글 생글 웃었다.

 

눈을 감고 내 속눈썹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이 상황을 뒤집을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번쩍 떠올랐다.

 

내 오른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이야기를 했다.

 

"너, 연애 해본적 없지?"

 

형진이는 갑자기 얼굴이 굳었다. 동아리 방의 창문이 반쯤 열려 커튼이 펄럭였다.

 

잠깐이였지만 형진이는 매우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누가, 누가 연애를 안해 봤다고 그래? 나..나도 좋...좋아하는 사람있다구 왜그래?"

 

형진은 말까지 더듬는다. 어지간히 정곡을 찔렀나보군. 나의 승리다.

 

난 이때를 놓치랴. 한번의 공격을 더 하였다.

 

"오호, 그러셔? 그럼 누군데? 말해봐 누군데? 누군지 말못하겠지? 어린것 같으니라고 니가 사랑을 알겠어? 호호호홋"

 

난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나의 승리를 확신했다.

 

갑자기 형진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이상하게 한참을 아무말을 안했다. 화도 내질 않고 고개를 돌려 펄럭이는 커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네 입을 열었다.

 

"누나야"

 

"응?'

 

.

.

.

 

 

형진은 여전히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고 나는 무슨 얘기를 들은지 한참 생각을 하여야 했다.  창가에 있는 선인장의 그림자가 어느새 우리가 앉아있는 자리까지 길게 늘어졌다.

 

 

 

 

 

"으아, 완전 아니지 않냐? 아, 내가 소개팅 다신 한번만 하나 봐라"

"씨발, 니가 그런말 한게 한두번이냐?"

복도에서 남자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려진 동아리방 문으로 남자동기들이 들어왔다.

 

"엥, 너희 둘이 동방에서 뭐하냐? 하핫. 니네 연애놀음이라도 하는 거냐?"

농구공을 쇼파에 던지면서 한 녀석이 물었다. 대 여섯명의 아이들은 각자 자리에 엉덩이를 던져 앉았다.

 

동아리방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늘 그랬듯이.

 

난 뭔가 일이 생각난듯이 행동하며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무슨 연애놀음은, 얘는. 난 리포트 있어서. 오늘 먼저 간다. 미안."

 

"야, 너 오늘 회의 있는거 몰라. 야!"

 

동기녀석 한놈이 날 불렀지만,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아리방을 빠져나왔다.

 

나올때 본 형진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은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

 

 

 

  그녀는 건물을 빠져나와 무릎에 손을 집을채 한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교정에 나무들은 푸르게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오른손을 긴머리속에 집어넣어 머리를 헝크러 트렸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하하, 내가 순정만화를 너무 많이 봤나봐"

그녀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더니 벌게진 얼굴로 약간은 어색한 걸음으로 총총히 걸어갔다.

 

그녀의

걸음걸음 총총히

파란 물보라가 튀는 듯 하였다.

 

 

 

 

아마 늦은 여름이였을거야.

                                               산울림

 

꼭 그렇지 않았지만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

나무사이 그녀 눈동자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네.

잎새 끝에 매달린 햇살 간지런 바람에 흩어져.

뽀오얀 우윳빛 숲속은 꿈꾸는 듯 아련했어.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우리들은 호숫가에 앉았지.

나무처럼 싱그런 그날은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밀키랜드(6)-아마 늦은 여름이였을거야.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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