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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20

기다림

늘 앉는 바위위에 앉곤 낚싯대를 놓았다.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다. 바람이 고목나무의 나뭇잎을 흔들어 쏴아아 소리를 낸다. 늘 듣던 소리이지만, 이 연못도 이제 한동안 못 본다고 생각하니 서운하다. ... 나는 나이답지 않게 낚시를 좋아한다. 그래서 종종 생각할 것이 있으면, 오늘처럼 혼자 연못에 앉아 낚싯대를 놓고 한참을 골똘히 생각을 하곤 한다. 낚시는 아빠가 가르쳐 주었다. 소설가였던 아빠는 글이 풀리지 않는 날이면 나를 데리고 이 연못에 낚시를 하러 나왔다. 그리고 낚싯대를 드리우곤, 어린 나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아빠는 한 번도 물고기를 잡은 적이 없었다. 간혹 잡히는 두꺼비들도 아빠는 놓아주었다. 그래도 나는 아빠와 함께 낚시를 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픽션 2014.01.02

이제는 동화에 살지 않는 너를 위해

이제는 다 커버린 그가 말했다. 몸은 컸지만 가끔 느껴지는 말투는 어릴적 동화에서 만난 그 모습 그대로 였다. "나는 어느 나이를 끝으로 친구를 잘 만들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쩌면 너무 사람을 가리는 것 일지도 모르지만 사람을, 어른들을 잘 믿지 못하는 거에요. 가끔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어른들의 사회적 관계 안에서는 친구가 되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 생각할 것도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많아요. 그런 것들을 나도 남들처럼 잘하구 싶은데 자꾸 내 몸이, 맘이 말을 듣지 않네요. " 오랜만에 자신을 잘 아는 나를 만나 그는 편안하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근데, 이제 나도 조금 달라져야 할것 같아요. " "어떻게 달라질 건데?"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한적 없던 그였다. "내가 조금 더 ..

픽션 2013.12.03

대화 1

1998년의 봄이었다. 하천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때의 K는 나에게 실없는 농담을 하였다. "교실이란 불공정한 승부를 배우는 곳인 것 같아." K는 이야기했다. "나는 어쩌면 우리는 모두 천재인데, 누군가 우릴 속이고 바보로 만들고 있는건 아닌가도 생각해." 날 보고 K는 싱긋 웃는다. "그런데 이 교복을 벗어도 여전히 우린 그 룰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그들이 우리가 배우는 말을 만들었거든." "..."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해체하는 테러리스트가 될거야." 진지한 표정으로 K가 말했다. 나는 물었다. "무얼 할건데? 폭탄?" "아니, 시를 써야지. 시를 써서 그들의 말을 조각 조각 해체해야지."

픽션 2013.12.02

저 별처럼 멀리 있는 네게 가는 지도를 그려야 겠어

어떤 만남이건 소중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말이다... * 인과관계는 없을지도 있겠지만 말이다. 내가 이렇게 누군가를 계속 만나가면 말이다. 정말 100% 그녀를 만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다양한 사람들을 깊이 없이 만나다보면 그녀들이 가진 어떤 중심의 모습보다는 외연의 표피에만 머물러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눈도 코도 입도 모두 다 지워져 버리고 말거단 말이다. . 넌 어쩌면 내게서 잊혀지는 게 두려운 거니? 잊어버리면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만다. 결국엔 점멸된 빛처럼 약간의 잔상이 흐려지다가 깜빡거리지도 못한 채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난 너를 사랑한다고 하였지만, 그리고 기꺼이 널 받아들이겠다고 하였지만 사실 너의 어떤 부분도 난 알지 못했고 나의 어떤 부분도 네가 알지 ..

픽션 2013.02.08

전뇌장치

소개팅으로 두 번째 만나는 수희씨를 만나기 위해서 서울대입구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을 타자 운좋게도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 옆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자리에 앉은 나는 아이폰을 꺼내 만지작 거리다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내 옆에 앉아 있는 짧은 치마의 여자분이 아니라 아이폰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수희씨에게 말을 건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답변이 오기 전까지 내 옆의 그녀를 잠깐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 또한 고개를 숙인채 누군가와 문자를 하는듯 얼굴을 확인 못했다. 아마도 예민한 그녀의 손가락은 중추신경을 따라 바로 뇌로 연결된 듯하다. 말을 하지 않지만 저 너머의 목소리가 작은 화면위로 나타날 것 같다. "ㅋㅋㅋ" 나는 예의있게 수희씨가 불안하지 않도록 문자를 찍어낸다. 무표정한 얼굴이..

픽션 2011.08.02

톰, 이제 노래를 불러줘

"불러줄게.' 두 팔을 벌린채 담장위를 체조선수처럼 몸을 기우뚱 대며 걷던 톰은 개구진 얼굴로 날 돌아보며 이야기 했다. 톰의 이야기에 난 오랜만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제야 노래를 부를 마음이 생긴거야, 톰?" "아냐, 아냐, 난 늘 노랠 부를 준비가 되어 있다구" 톰은 자기 얘기를 증명하려는 듯 주머니에서 꼬깃 꼬깃한 종이를 한장 꺼내며 담 귀퉁이의 내 옆에 앉았다. 난 톰이 꺼낸 종이를 보기 위해 나란히 앉은 톰의 등 뒤로 허리를 젖혔다. "그건 뭐야?" 톰은 입꼬리를 한쪽을 올리며 대답했다. "후후후, 불후의 명곡이지. 이거 무려 내가 처음 부르는 노래라고" 톰은 그렇게 말하고 담장 밑으로 펄쩍 뛰어 내려간 후 엉덩이를 탁탁 털었다 . 높지 않은 담장이였지만 나도 내려가는 걸 주춤하다가 이..

픽션 2010.04.04

밀키랜드-바람이 시작되는 곳 (1)

럭키는 긴바람의 끝을 찾아 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세상의 모든 바람들이 출발하는 곳 그곳에 가고 싶다고 하였다. 럭키는 그곳은 아마 하늘위에 뜬 작은 섬일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곳에서 가슴이 뜨거워진 어린 바람들이 세상 곳곳을 여행을 하기 위해 땅위로 내려올 것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 어쩌면 지금 럭키는 어린 바람들과 세상을 여행하고 있을 런지도 모르겠다. . 하늘은 적당히 흐리고 구름사이로 간간히 햇살이 비춰오는 그늘진 어느날 이였다. 나는 커다란 밤나무 아래 누워서 흐르는 구름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나란히 누워있던 럭키는 갑자기 벌떡일어 나서 소리쳤다. "아-우리 여행하자!!" 럭키는 항상 그렇게 엉뚱한 이야기를 내뱉었기 때문에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왜? 갑자기?" "오늘 날씨말이야" "날씨..

픽션 2010.03.19

밀키랜드-비둘기는 하늘의 쥐 (2)

난 긴 겨울코트를 입고 있었다. 날은 제법 추워지기 시작하였던 11월로 기억한다. 오랫동안 서랍에 잠들어 있던 겨울냄새가 나는 코트를 입고서 나는 거리를 나섰다. 해는 막 마지막 빛을 땅위에 쪼이고 긴어둠에 몸을 숨기려 하였었다. 거리에 사람들은 저마다 몸의 열기를 뺏기지 않으려는 듯이 잔뜩 움크린 채로 혹은 둘이 붙어있는 채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때에도 나의 시간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속도로 흐르는 듯 하였다. 째깍.쨰깍. 손목시계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채 사람들의 시간의 흐름에 다가서려 하였다. 쨰깍.째깍. 시침은 재잘재잘 말을 걸듯이 내 귀를 간지럽혔다. 이름없는 새 한마리가 머리위로 푸드득 날아가버린다. 도시의 비둘기. 88올림픽 이후로 우리나라의 산비둘기는 사라져만 간다. 사마란치 위원장이 ..

픽션 2010.03.19

밀키랜드-let it be (3)

밤은 고요했었다. 일요일 밤, 하루가 다 지나고 나서야 나는 눈을 떴다. "엄마" 일어나서 무심결에 엄마를 불러봤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제야 이 집엔 나혼자라는 것을 떠올렸다. 내 방에서 나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에는 비어있는 반찬통들과 물이 담겨있는 병밖에 없었다. 물을 꺼내서 입을 대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거실에 가운데서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창밖은 깜깜했고 구름낀 밤하늘에 곧 비라도 올듯이 습기진 냄새가 느껴졌다. 한참을 그렇게 어린 나는 서있었다. 그리고 거실의 한구석에 피아노 곁으로 갔다.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엄마는 나에게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줬었다. 렛잇비. . 피아노 곁에 내겐 엄마는 지친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었다. when i find mysel..

픽션 2010.03.19

밀키랜드(4)- 시작한 곳과 돌아갈 곳

내 몸둥이가 이대로 눈에 파뭍혀 이대로 쏟아지는 눈에 파뭍혀 차갑게 식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게 더이상 바뀌는 계절에 의미는 없다고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다. . 끝없는 바람이 날 향해 불어왔다. 바람은 물었다. "너는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게냐?" 난 더이상 남은 힘이 없어. 더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어. 바람은 이상하게도 따뜻하고도 부드럽게 내몸을 감싸 하얗게 눈으로 덮인 세상을 발밑에 둔채로 -하얀 눈이 세상에 오기위한 그 문으로- 위로 위로 내 몸을 휘감아 올렸다. 창백한 달을 감싸고 있는 검은 구름은 나에게 말을 했다. "너는 어느 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게 너일 뿐이다." 검은 하늘위로 내 몸은 바람의 부드러운 손길에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야옹. 작은 고..

픽션 201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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